
마음속의 큰 산, 겁 없이 발을 내딛다
늘 마음 한구석에 '언젠가는 가야지' 하며 큰 산으로만 여겨지던 팔공산이었습니다.
선뜻 용기 내지 못하던 어느 날, 남편의 한마디가 저를 움직였습니다.
"오늘 팔공산 가자."
망설일 틈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갑시다."
42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시작한 100대 명산 도전.
남들보다 두 배는 느린 걸음이지만, 남편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팔공산 비로봉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 팔공산 수태골 코스 요약
▪︎ 산명: 팔공산 (비로봉 1,192m)
▪︎ 위치: 대구 동구 / 경북 군위·영천·칠곡 경계
▪︎ 산행코스: 수태골탐방로 입구 → 동봉 → 비로봉 → 서봉 방향 하산 삼거리 → 수태골 복귀
▪︎ 소요시간: 일반 등산객 4~5시간
느린 산행 기준 6~7시간
▪︎ 난이도: 중상
ㅡ 큰 고도차
ㅡ 긴 오르막 구간
ㅡ 동봉 이후 바위 능선 구간
▪︎ 코스 특징:
ㅡ 솔숲과 흙길이 이어지는 힐링 숲길
ㅡ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
ㅡ 동봉과 비로봉을 모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능선 코스
▪︎ 특별 포인트:
ㅡ 동봉 마애여래입상
ㅡ 천년 철쭉나무
ㅡ 시원한 조망
ㅡ 비로봉 정상 인증
▪︎ 산행 팁:
ㅡ 여름철 충분한 물 준비 필수
ㅡ 동봉이 아닌 비로봉이 최고봉
ㅡ 갈림길 표지판 수시 확인
수태골에서 시작된 느린 걸음과 뜻밖의 인연
나만의 속도로 걷는 힐링 숲길
수태골에서 첫발을 내딛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느리게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걷다가 물 한 모금.
또 조금 걷다가 사과 한 조각.
그렇게 쉬엄쉬엄 걷는 시간이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산은 빨리 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즐기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케이블카 대신 두 발로, 그리고 만난 부처님
예전 같았으면 케이블카를 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날은 오직 두 발로 오르기로 했습니다.
동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만났습니다.
조용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전한 산행을 기도했습니다.
산에서 만난 짧은 쉼표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동봉에서 만난 따뜻한 마음, 그리고 진짜 정상 비로봉
산에서 닿은 따뜻한 정
쉬고 또 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동봉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준비 없이 올라온 젊은 등산객에게 자신의 얼음물을 나누어 주시던 한 산객.
"이런 큰 산은 물 없이 오면 안 돼."
걱정 어린 말 한마디에 산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산은 정상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구 시내와 능선이 보이는 조망 사진
진짜 정상을 향해, 숨겨진 비로봉으로
동봉에서 만난 한 분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할머니라기보다 젊은 언니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
그분이 알려주셨습니다.
"진짜 정상은 비로봉이야."
이미 오후 1시가 넘어 허기도 지고 다리도 무거웠지만, 진짜 정상을 눈앞에 두고 돌아설 수는 없었습니다.
송전탑 옆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비로봉.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천년의 선물과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
꿀맛 같은 점심과 천년 철쭉나무의 감동
정상 인증을 마친 뒤 먹은 김밥과 컵라면.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습니다.
하산길에서는 뜻밖의 선물도 만났습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천년 철쭉나무.
척박한 환경에서도 굳건히 살아온 생명력에 한참 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산은 늘 말없이 삶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100m 앞의 미로, 산이 준 가르침
하산길 삼거리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119에 전화까지 하게 되었고 순간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구조대의 안내를 따라 조금만 이동하자 불과 100m 앞에 표지판이 나타났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눈앞의 길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인생도 산행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위기의 순간일수록 가장 필요한 것은 서두름이 아니라 침착함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느려도 괜찮아, 가치 있는 우리들의 발걸음
이번 팔공산 산행은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 두 발로 걸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하루였습니다.
힘들 때마다 기다려주고,
길을 잃었을 때 함께 찾아주고,
정상에서는 가장 먼저 축하해 주는 사람.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산행이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우리 부부의 가치 있는 걸음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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